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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독산산성 1600년 동안 숨겨진 미스테리

왜성 성곽구조위에 건설된 조선시대의 이야기
일본의 성곽 기술은 백제에서 전수 받은 것

[경기헤드라인=문수철 기자] 오산 독산산성(이하 독산성)을 왜성으로 보는 시각과 한국성으로 보는 시각이 겹치고 있지만 아직 그 정확한 해답은 나와 있지 않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오산의 독산성을 왜성으로 보는 이유는 동문의 독특한 ‘ㄴ’자 구조 때문이다. 성문 입구를 ‘ㄴ’자로 꺾는 양식은 일본성의 대표적 양식이다. 독산성의 5개 문중에 이렇게 ‘ㄴ’자로 꺾인 형태의 문은 확실하게 흔적이 남은 동문과 ‘ㄴ’자 흔적만 남은 남문, 서문이 해당 된다.

 

 

독산성 동문의 경우 보적사라는 사찰이 동문의 주요 적군 방어시설위에 사찰을 증개축 했기 때문에 선명한 2층의 마스가타(2중 높이의 ㄴ자 출입구조)가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순천 왜성의 북문 출입구조와 거의 일치한다.
 


남문도 이런 구조는 비슷하다. 남문의 경우 조선시대에 들어와 보수 작업을 한 흔적이 있으며 일부 잘못된 복원으로 인해 성의 원래 모습이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남문을 들어오면 오른쪽은 경사가 급하고 왼쪽으로 틀어져 들어가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 남문에서 정면으로 들어가면 채 5m 터를 못가 높이가 다른 성벽이 발견된다. 수풀에 가려져 있지만 3m 이상 차이가 나는 2개의 축석 시설물이 남문을 바라보고 있다. 전형적인 일본 성의 제곽식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서문은 이와는 다르지만 서문정면에서 보면 곧장 출입할 수 없도록 정확히 동문의 깊이만큼의 위치에 문의 뒤쪽에 방어타워가 있었다는 흔적이 있으며, 그 흔적을 따라 다시 전진하면 커다란 자연석과 맞물려 축석된 돌들이 보인다. 정확히 일본식의 제곽식 성곽구조이다.
 


결정적으로 독산성 정상에 있는 세마대가 독산성을 일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성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덴슈가쿠(천수기단)이다. 현재 독산성의 정상에는 세마대라는 권율장군의 설화에 얽힌 조그마한 누각이 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세마대는 정사각형의 축석에 의해 만들어진 기단이다. 그 기단위에 조그마한 누각이 있는 것이다.

기단의 높이는 동문에서 보면 상당하다. 서남사면에 남아 있는 세마기단의 축석 부분은 현재 풀에 가려져 있지만 전체적으로 순천왜성의 천수기단보다 크고 웅장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독산성은 천수기단부를 제외하고도 2개 이상 내성과 서남사면을 따라 복잡한 구조의 건축물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독산성은 일본성들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독특한 구조인 ‘해자(물 또는 물길을 이용한 성곽방어 시설)’가 없다. 굳이 해자라고 할 만한 것은 북문 아래에 있는 황구지천이다. 과거에 황구지천에서 배를 이용했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황구지천이 현재 보다 크고 수량이 많아 황포 돛단배 정도가 운항 됐다면 황구지천을 독산성의 해자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독산성이 임진왜란 이전에 존재했었다면 많은 미스터리가 남는다. 일본군은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난공불락의 요새적 성을 만들었다. 순전히 사무라이들 간의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성답게 전투를 위한 최적화 된 성들은 조명연합군을 힘들게 만들었다. 왜란이 끝나는 그날까지 함락되지 않았던 울산왜성은 조명연합군 6만 명이 쳐들어갔으나 함락시키지 못했을 정도다.

그런 왜성의 원형 구조가 내륙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도 오산에 있을 이유는 없다. 다만 가설이지만 서기 660년 백제 패망이후 경기도 일대에 있던 백제의 주력부대의 거점으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는 있다. 이때 만들어진 백제의 성은 일본 규슈에 흔적을 남겼다. 백제부흥군의 패전이후 수많은 백제인들이 규슈로 건너가 나당연합군이 쳐들어올까 두려워 백제인과 일본인이 2개의 산성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정황을 보면 임진왜란 당시 만들어진 왜성들은 백제인들의 전투방식에 의해 개선되고 산성을 쌓는 방식도 이때 백제로부터 배운 것으로 추정할 수는 있다. 이런 가설은 서기 663년 거의 일천적의 전함에 군사 27,000명 이라는 대병력의 일본군이 170여척의 당나라 수군에 대패한 이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배와 성을 만드는 기술이 부족한 일본이 백제의 성곽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가 임진왜란 당시의 왜성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이후 독산성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주요 전략적 거점성으로 자리 잡았다. 1831년 간행된 화성지에 남아있는 독산의 기록을 보면 독산성 안에는 운주당, 삼문, 진남루, 장교천, 아전청, 관창, 사창, 군기고, 무고, 서고, 동고 보별군이 있었으며, 성내에는 126호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성 밖에도 127호가 거주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당시만 해도 독산성은 관리가 제대로 된 성이 분명하지만 일제강점기와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관리부실로인해 지금은 그저 묘지산성으로 전락한 그런 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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